불교 | 국립중앙박물관, ‘청룡사 괘불’ 특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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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1 | 작성일 | 15-09-09 1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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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설법모임 화폭에 담은 청룡사 괘불
상설테마전…오는 11월29일까지 불교회화실서 전시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이 보물 제1257호로 지정된 경기도 안성의 ‘청룡사 괘불’을 오는 11월29일까지 상설전시관 불교회화실에서 특별 공개한다.
지난 6월2일 베일을 벗은 청룡사 괘불은 석가모니불이 인도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대형 영산회상도(길이 9.18m·폭 6.5m)로, 17세기 중엽 영산회상도(석가설법도)를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괘불이란 절에서 특별한 법회나 의식을 할 때 괘도처럼 만들어 걸어두는 대형 불화를 말하는 것으로, 괘불이라는 말 속에는 ‘걸개를 마련하여 매단 부처’라는 뜻도 내재돼 있다.
특히 효종 9년인 1658년에 승려화가 명옥 스님 등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청룡사 괘불’은 전남 나주 ‘죽림사 괘불’(1622년 제작)과 함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괘불 중 하나다.
또, 1658년 인평대군(1622~1658)의 원당(願堂)인 안성 청룡사에서 조성돼, 17세기 조선이 성대한 불교의식을 거행하면서 조성한 야외의식용 괘불을 보여주는 귀중한 예가 되고 있다.
당시 불교의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죽은 많은 영혼들을 위무하기 위해 법당 내부에서 외부 공간으로 이동해 괘불을 걸고 죽은 이들을 천도하기 위한 대승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의식이 거행되고 석가모니와 영취산 설법이 그려진 괘불이 법당 밖에 걸리면 현세의 공간은 석가가 머무는 정토(淨土)로 바뀐다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청룡사 괘불. |
법회에 모인 많은 청중 중에서 부처의 앞쪽에 가사와 장삼을 입고 승려처럼 머리를 깎은 인물이 뒤돌아 앉아 있는데 그는 석가의 제자 중 가장 지혜로운 사리불(舍利佛)이다.
사리불은 설법을 듣는 청문자인데 이 도상은 명대 ‘법화경변상도’에 이어 조선전기 ‘법화경변상도’의 영향을 받아 그려진 것이다. 괘불에서는 청룡사 괘불 등 3점에만 등장하는 보기 드문 예다.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6대 보살, 10대 제자 등이 에워싼 모습인데, 중앙의 석가불은 머리에서 빛이 나고 특이하게도 오른손은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은 무릎에 올린 시무외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리는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관을 쓴 제석천, 면류관에 홀을 든 범천상, 책과 연꽃·정병 등을 들고 있는 6명의 보살 등이 석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석가 위로는 여러 제자들과 부처의 수호신인 4명의 금강역사상이 있고,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여러 불상들이 작게 그려져 있다.
아울러 ‘주상전하와 왕대비전하, 왕비전하, 세자저하의 안녕을 받들어 모신다’는 축원문과 성주(城主) 김홍석이 괘불 조성을 위해 향대(香臺)를 시주했다는 내용이 화기에 기록돼 있다.
괘불 제작에는 화원인 사과(직책 정6품격) 박란을 비롯해 승려 명옥비구(明玉比丘) 등 다섯 명이 참여했는데, 이들이 성대한 괘불 제작에 참여한 것은 불화의 조성이 왕실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보여준다.
불화는 보통 붉은 색, 녹색, 남색의 진채(眞彩) 위주로 그려지는데 비해, 청룡사 괘불은 담채(淡彩)의 사용으로 맑고 산뜻한 느낌을 주며 노란색, 하늘색 등의 중간색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천개(天蓋)와 바닥에 그려진 꽃문양, 채운(彩雲) 등이 산뜻한 채색과 어우러져 석가가 머무는 곳이 정토임을 알려준다.
한편, 청룡사는 1265년(고려 원종 6년) 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가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대장암(大藏庵)으로, 1364년(공민왕 13년)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한 후에는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봤다는 데서 유래한다.
김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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